고백컨대,
나는 이것이 어디에서 오는지 모릅니다.
왜 자꾸 외치는 소리가 안으로부터 울려오는지,
내가 왜 그토록 선명하게
당신을 안다고 느끼는지 모릅니다.
내가 선 지점이 인생의 길 전체에서
어느 정도 능선에 닿았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더 갈 수 있을지 모릅니다.
당신이 아직 거기 있는지 모릅니다.
다시 일어서서 앞을 보자고,
할 수만 있다면 몸 던지듯 다시 가자고.
나와 당신을 동시에 일으키려 쓰고 불러온 그런 노래들이
아직도 내 건반 위에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막막한 시대에
안개처럼 드리워진 불안과 불확실성 속에서는
어쩌면 그런 부탁조차도 너무 가혹한 것일지 모른다.
바로 그 생각에 가닿았을 때,
나는 작업하던 앨범을 꺾었습니다.
그리고 이 노래들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었어요.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옳았습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요.
이것은 내 투쟁과 싸움의 결과이나,
모순적이게도
나는 당신이 이 노래들과 함께 거닐 때
잠시나마 평화로울 것이라 믿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밟아서 난 굽고 좁은 길.
어디에나 그런 길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 소로小路를 따라 걷다 마음에 드는 나무를 발견하면
나는 가만히 나무껍질에 손을 대고
결을 따라 쓸어내리며 매만져보곤 합니다.
거칠어 보이지만 늘 생각보다 부드러운 수피樹皮는
수백수천 번 겉이 터지고 벗겨지며
오랜 세월 스스로를 이루어 온 흔적입니다.
우리도 어쩌면 그와 같은 방식으로
겨우겨우 이루어 온 지금의 자신일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그 누구도, 심지어 당신 자신조차도
결코 스스로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하대해서는 안 됩니다.
때에 이르면 나무들도 옷을 벗고
땅에 떨군 모든 것들은 뿌리로 돌아가겠지요.
그렇게 혹독함을 견디고 신록이 피어날 때쯤이면
나도 당신도 결국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거뜬히 나을 것입니다.
이듬해에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이제 긴긴 겨울잠을 자겠습니다.
듣고 붙잡을 노래 하나 있음이
얼마나 깊은 포옹인지 생각합니다.
이 작은 노래들이
나의 새들을 숲으로 이끌어주고
새들이 머무는 곳에 숲을 데려와주기를.
안개가 아무리 짙다 한들
나는 당신이 거기 있음을 압니다.
당신은 나의 목소리를 듣고,
누군가 함께 있음을 압니다.
평안을 빌며.
심규선